강화도에서 병자호란 순절 29인의 넋을 기리다
강화도에서 병자호란 순절 29인의 넋을 기리다
  • 이두 기자
  • 승인 2018.11.2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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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에서 제향… 원로대신 김상용은 손자와 함께 화약고 앞에서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위인을 기리는 강화도 충렬사 추기 제향식.

 1636년 겨울 강화도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는 강화도에서 마주 보이는 문수산 일대에서 군사 1만6000명으로 강화도 공략을 준비 중이었다. 배와 뗏목, 수레 등을 만든 청은 마침내 해가 바뀐 1월 22일 강을 건너 강화도로 진격한다. 강화도는 아비규환이었다.   
 77세인 원로대신인 김상용(金尙容·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였던 김상헌의 형)은 죽음을 준비했다. 남문 화약고 앞에서 하인에게 불을 가져오라 시켰다. 남문을 지키던 군졸들이 김상용의 뜻을 알아차리고 함께 하겠다고 한다. 13살된 김상용의 어린 손자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마침내 불씨가 화약고 위에 떨어졌고 이들의 목숨은 산산조각 났다. 남문루가 폭발로 날아가 버렸으니 이들의 시신이 어찌 됐을지는….
 폭발 현장 먼 곳에서 김상용의 신발 한 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강화도 충렬사가 세워진 곳이다.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에서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 공조판서 이상길, 장령 이시직을 비롯한 29인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고 있는 곳으로 효종 9년(1658년)에 사액(賜額, 임금이 서원에 현판을 써서 내려주는 일)됐다. 1972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됐다.
강화 충렬사 유림회(도유사 구자천)는 지난 21일 강화충렬사(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소재)에서 유림 등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추기 제향을 거행했다. 매년 음력 10월 중순 정일(금년 음력 10월 14일)에 개최된다

김상용.

김상용은 선조 15년(1582년) 진사가 되고 문과에 급제했으며, 1632년 우의정에 발탁됐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빈궁과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문루(南門樓)에서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했다.
 대한민국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틈에 끼어 언제나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이다. 일본에 36년간 나라를 빼앗기기도 했지만 지난 50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틈새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오늘날 과연 김상용같이 몸바쳐 나라를 생각하는 위인이나 정치가가 우리 나라에 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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