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독립선언 낭독지 태화관에 ‘3·1독립선언광장’
기미독립선언 낭독지 태화관에 ‘3·1독립선언광장’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9.01.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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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국세청 뒤편… 한때 이완용 소유지 ‘아이러니’

 

3.1 독립선언문 낭독지인 태화관에 들어설 독립선언광장 조감도.
3.1 독립선언문 낭독지인 태화관에 들어설 독립선언광장 조감도.

 

100년전인 191931일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였던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터에 ‘3·1독립선언광장이 조성된다. 태화관은 지금의 서울 종로 국세청 뒷골목인 태화빌딩이 있는 자리다. 서울시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3·1독립선언광장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태화관은 100년전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역사적인 자리이지만 이미 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쉬던 곳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태화정(太華亭)으로 불렸으며 중종반정 공신 구수영이 살았고, 당시 태화관 남측에는 태화정(太華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순화궁(順和宮)으로 불렸다. 조선 후기 권문세가였던 안동김씨 김흥근(金興根)의 소유를 거쳐 헌종(憲宗)의 후궁인 경빈(慶嬪) 김씨의 사저인 순화궁(順和宮)이 되었다.
이완용이 화재로 집을 잃자 일제로부터 순화궁을 대신 받았다고 한다. 이곳에 1905년 을사늑약 밀의, 1910년 강제병탄 조약 준비 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때는 명월관(明月館) 분점 태화관(泰和館)이 되었다. 1918년 명월관이 화재로 없어지자 명월관의 주인 안순환이 이완용으로부터 순화궁을 인수해 명월관의 별관으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태화관(太華館)이라 하였다가 뒷날 태화관(泰和館)으로 바뀌었다. 1939년 순화궁을 헐고 동서양 혼합양식의 3층 석조건물이 들어섰다. 1980년대 도시재개발사업에 의거 태화빌딩 및 하나로빌딩 분리 신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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