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남동구가 내년이면 탄생 30년이 된다. 남동구는 지난 1988년 인천 남구에서 분리돼 남동구가 됐다. 30년만에 남동구는 인천의 대표 중심구가 되었다. 인천시청과 교육청이 남동구 구월동에 있으며 역시 구월동에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하나인 로데오거리가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산업단지인 남동공단이 역시 남동구에 있다. 내년 30년을 맞아 남동구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인천 중심지로 성장
남동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처음 등장한다. 당시 행정개편에 따라 인천부 남촌면과 조동면이 합쳐서 부천군 남동면이 되었다. 1940년 남동면이 다시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남동이란 명칭을 사라진다. 1988년 1월 남구의 일부를 나누면서 남동구라 칭하게 된다. 남동구는 인천 중심지인 구월동을 비롯해 소래포구 일대의 논현동, 도림동, 만수동, 간석동 등 19개 행정동에 이른남동구는 1988년 1월 1일자로 남구에서 분구(分區)해 이후 30년간 남동구는 '동쪽의 변방'에서 '행정·금융·유통 중심지'로 성장했다. 1985년 구월동으로 이전한 인천시청을 중심으로 행정 기관과 은행 본·지점, 농축산물도매시장, 대규모 택지개발단지 조성 등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남동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으면서 서울·수원·부천·시흥·안산 등으로 연결되는 입지 조건은 남동구의 성장을 이끈 지리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1988년 개청 당시 31만명(13개 행정동)이던 인구는 지난 7월 기준 55만명(19개 행정동)을 넘어섰다. 주택 수는19만여 호로 3배 이상 늘었고, 사업체 수는 3148개에서 3만5124개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한해 185억원이던 예산 규모는 7000억원대로 올랐다. 행정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공무원 정원 역시 같은 기간 379명에서 1000여명으로 늘었다.
소래포구는 남동구를 대한민국에 널리 알리는 대표적 명소이다. 소래포구는 1970년대 인천 내항이 준공되면서 소형어선들이 소래로 몰리면서 본격 형성됐다. 수많은 수산물로 전국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 첫 화약을 생산했던 한국화약 인천 공장도 남동구에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화약박물관이 되었다.
소래포구 축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축제다. 풍어제를 시작으로 화려한 개막식과 먹을거리, 볼거리를 펼쳐 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각종 수산물 체험과 향토 음식경연대회 등 일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소래포구 옆으로 달렸던 수인선 열차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수인선은 전철로 다시 살아난 인천 남동구를 인천 중심지와 시흥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소래포구에 있는 소래역사관은 소래포구와 소래염전, 수인선 역사 등 소래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장수동 만의골에는 80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키가 30m, 둘레가 8.6m인 은행나무는 뿌리부분부터 줄기가 다섯 개로 고르게 갈라지며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가지가 마치 수양버들처럼 늘어져 일반 은행나무와는 많이 다르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민속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가을에는 온통 노랗게 물들어 찾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다. 평소에도 소원을 빌러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간석동에는 5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남동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주민들의 더없는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600년 된 남촌동 은행나무, 500년의 구월동 회화나무도 남동구의 명물이다.

◆백범 김구, 이승훈, 박두성 등 남동구와 인연
남동구 장수동 인천대공원에는 민족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1876~1949)의 동상이 서있으며 백범 광장이 이다. 그는 인천에서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1914년에 감옥살이를 하면서 인천항을 만드는 노역을 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인천은 제2의 고향’과 다름없다며 광복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인천이었다.
남동구 장수동에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세례자인 이승훈(1756~1801)의 무덤이 있다. 이승훈은 이땅에 천주교가 들어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이승훈의 아들 이신규와 손자 이재겸이 거주했던 곳이 바로 장수동 근처 반주골이다. 이승훈은 처형된 후 반주골에 묻혔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때 정약종, 최창현, 홍교만 등과 함께 서소문에서 처형당했다. 그의 유해는 만수동 남동 정수장 뒤편에 묻혔으나 1981년 천주교 성지인 경기도 광주 천진암으로 옮겨져 현재는 비석과 터만 남아있다.
한글점자의 창시자로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 박두성의 묘도 남동구 수산동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맹인학교에 근무하던 박두성은 오랜 연구 끝에 1926년 ‘훈맹정음’이라는 한글 점자를 만들어 낸다. 그는 교육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으로서 대한민국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남동구청에서 소래쪽으로 300m쯤 가면 그이 묘가 있다. 그는 생전 “배우지 않으면 마음조차 암흑이 될 터이니 배워야 한다”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동구청, 2018년 ‘30주년 비전’ 행사
인천 남동구가 개청 3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기념 사업을 펼친다고 20일 밝혔다. 남동구는 개청 30주년인 내년 1월 중장기 발전 전략인 '남동 비전'을 선포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구는 공무원 41명으로 구성된 남동 비전 플래너를 조직해 '따뜻한 남동'(복지·보건·교육), '쾌적한 남동'(도시·주택·환경), '행복한 남동'(재정·경제·일자리), '즐거운 남동'(안전·문화·행정) 등의 분야에서 2018~2023년에 실행해야 할 5개년 계획을 수립 중이다.
구정 30년과 도시의 발전 과정을 기록한 사진 전시회, 홍보 영상물 제작 등의 사업도 계획돼 있다. 이밖에 남동구는 개청 30주년인 내년 한 해 동안 지난 30년을 되돌아 보면서 미래 비전을 수립하는 취지의 다양한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장석현 남동구청장은 "'남동구의 미래,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구민과 공직자가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더 살기 좋은 남동구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겠다"고 말했다.